한국퀴어영화제 리뷰 KQFF REVIEW


[데일리 뉴스]퀴어, 가족

퀴어, 가족

오윤주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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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 수 있다는 것,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일까? 이는 모든 인생이 필연적으로 던져야만 하는 질문들이다. 나의 정체성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직시하려는 욕망은 인간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의 “정상성”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존재에 대한 위협을 받게 된다. 아직도 퀴어문화축제 광장 밖에서는 동성애가 교화될 수 있는 죄악이라고 외친다. 퀴어들은 직장에서부터 법적 지위, 사회적 관계, 그리고 가족 관계까지 잃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가장 두려운 일은 가족을 잃는 것이다. <해외단편 1>은 퀴어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자신일 수 없도록 가로막는 가족이라는 관계에 집중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로의 편이 되어주어야 할 가족이, 퀴어에게는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된다. 온갖 사회적 폭력과 억압 속에서 가족조차 그들에게 등을 돌린다면, 퀴어들은 무력하게 무너져 내릴 것이다.

물처럼 산다는 것; <스위밍>, <실비아>, <프란 디스 썸머>, <피쉬>

세 영화에서 물은 젠더 이분법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흐르고 싶은 욕망의 현현이다. <스위밍 Swimming> 속 미쉘의 자해 그 이면에는 청소년으로서 감당하기 힘들었을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뿌리깊은 소외감이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가정에 몰두하는 엄마를 향해 미쉘이 느끼는 원망감은 단지 새로운 가족에 속할 수 없다는 소외감보다 근본적인, 레즈비언으로서 결코 꿈꿀 수 없는 “정상가족”을 향한 두려움과 공포였을 테다. 이러한 미쉘에게 물은 억압적인 현실로부터의 탈출구다. 자해를 한 뒤 미쉘은 샤워기 아래서 쏟아지는 물을 맞고, 답답한 집에서 벗어나 바다로 간다. 미쉘과 엄마의 화해는 수영장에서 이루어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미쉘과 여자친구는 물 속을 자유롭게 유영한다. 물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획하는 폭력적인 잣대 너머의 자유로운 세계다.

<실비아 Silvia in the waves>라는 영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아빠는 물 속에서 실비아로 다시 태어난다. 아빠를 향해 ‘그녀(she)’라는 대명사를 고수하는 아들은 아빠가 실비아라는 새로운 이름을 짓게 된 이유를 들려준다. 어릴 적 장신구를 훔쳐 달아난 옆집 여자아이 실비아처럼, 아빠도 늘 그렇게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었을 것이다. 죽은 아빠의 이름을 지우고 실비아를 덧쓰는 순간, 물 속의 Silvia가 눈을 번쩍 뜬다. 어머니의 양수와 같은 공간에서 죽은 아빠는 실비아로 재탄생한다. 물속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찬 창조의 공간이며, 젠더플루이드가 현실화된 공간이다. 그곳에서 아빠는 자신의 진정한 성 정체성을 끌어안고 세상 밖으로 나선다.

<프란 디스 썸머 Fran this Summer>의 바다는 유동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는 화장을 하고 여성용 수영복을 입은 채 여름을 즐기고자 하지만, 집 밖으로 나가기는 두려워한다. 벽장에 갇혀있는 모습이다. 결국 여자친구와 동생의 설득으로 바다에 가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위축되기만 한다. 바다는 그에게 폭력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가능성의 공간이다. 프란이 시선과 편견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바다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면 말이다.

<실비아 Silvia in the waves>의 실비아는 죽을 때까지도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만 했다. 영화에서는 남겨진 가족의 대화를 통해 그가 생전에는 줄곧 젠더퀴어 정체성을 숨겨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자신의 몸과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실비아와 이를 외면했던 아내, 그리고 아빠를 실비아로 호명하는 아들의 기묘한 관계가 흥미롭다.

물처럼 자유롭게 흐르는 <피쉬 Fish>의 세계에서 마리나와 그녀의 친구들은 물고기처럼 자유롭다. 퀴어들은 그들만의 대안 가족을 꾸려간다. <피쉬 Fish>에 등장하는 성소수자 공동체는 그들만의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마리나의 일상을 가감없이 따라가는 시선을 통해, 퀴어 여성과 그들의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피쉬 Fish>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퀴어 간의, 그리고 여성 간의 연대다. 남자로부터 사고를 당해 피가 흐르는 콧구멍을 탐폰으로 막아주는 장면에서, 상처입은 여성성을 여성성으로 치유하려는 방식이 돋보인다.

자기 자신이고 싶은 이들의 이야기; <유토피아>

<유토피아 Utopia>는 의문의 화재로 인해 코마 상태에 빠진 주인공이 무의식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독특한 구조이다. 엄마에게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숨겨야하는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안젤의 욕망이 유토피아로 구체화된다. 안젤은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엄마에게 들킬 것을 두려워한 탓에 가상의 세계를 창조해내기까지 한다. 혼수상태에 빠진 안젤이 만들어낸 허구의 유토피아에서 그들은 로스 앤젤레스의 근사한 플랫에 사는 백인 레즈비언 커플이다. 그러나 그 유토피아 속에서조차 안젤은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다. 꿈 속에서마저 트라우마는 반복되고 현실이 무자비하게 침입한다. 이제 그녀는 도망치지 말고 지금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투쟁해야만 한다. 결국 <해외단편 1>의 다섯 작품들은 모두 그저 자기 자신이고 싶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는 누구든 사랑할 수 있고 그 누구와도 가족이 될 수 있다. 퀴어와 가족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 속에서 당신의 진정한 가족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해외단편1>은 6월 6일 11시 30분 2관, 6월 7일 13시 30분 3관에서 관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