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퀴어영화제 리뷰 KQFF REVIEW


[리뷰-국내 장편: 삼촌은 오드리 햅번]가슴 활짝 펴고 당당하게

가슴 활짝 펴고 당당하게

유영 기자단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서 볼 수 있듯이 이름 안에는 한 사람의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때론 이름이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의 잣대가 되기도 한다. <삼촌은 오드리 헵번>은 오드리 라이브 바에선 언니이자 누나로, 오드리 패밀리 하우스에서 는 큰 언니로 불리지만, 그런 오드리 앞에 자꾸만 오드리를 ‘오두일’과 ‘삼촌’으로 부르는 두 사람이 찾아오면서부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영화다. 오두일의 ‘오드리’은 모두가 예상했다시피 20세기의 아이콘인 오드리 헵번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나비 의 입을 빌려, ‘오드리’라는 이름 석 자가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박애와 사랑의 오드리 헵번에서 따온 것이라는 점, 오드리 헵번의 심볼이라고 할 수 있는 검정 선글라스와 검은 드레스를 입고서 형과 조카 앞에 나타나는 오드리의 모습에서도 오드리 헵번의 잔상을 확인해볼 수 있다. 특히나 오드리가 라이브 바에서 나비, 장미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형(오성일)과의 기억을 되짚어보는 장면에서 실제로 오드리 헵번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라고 말하곤 했던 청록색의 의상을 오드리가 입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오드리와 오드리 헵번이 저절로 동일시하게 될 정도다.

 영화는 성 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들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편견과 차가운 시선들을 단편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극 중 초반 준호가 나비와 오드리가 쓴 식기구를 같이 썼다간 병에 감염될 거 같다며 싱크대에 다시 씻는 등 성 소수자들을 비정상인 혹은 병에 걸린 환자로 치부해버리는 혐오적 인식에 나비와 오드리가 유머와 재치로 받아치는 장면은 성 소수자들에 대한 우리의 고정화된 생각을 환기 시킨다. 또 오드리 패밀리가 외출을 할 때, 평상시보다 치장을 한 채로 나가는데 이에 대해 장미는 일종의 배려라고 말한다.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있는 화장실에서 사람들이 그들을 두려워하고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그렇다. 여기에서 성 소수자들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씁쓸한 사연을 엿볼 수 있다.

 누구에게나 각자만의 공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주위의 시선에 신경 쓰느냐 한껏 치장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본인의 있는 그대로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 말이다. 준호에게 아빠 성일과 사는 옥탑방은 준호에게 그런 공간이 되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가장 편하고 따스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집조차 그들에겐 너무나 차가운 공간이었다. 이런 생활이 익숙했던 준호는 오드리 하우스에 들어가서도 문을 굳게 잠그고서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하지만 오드리 하우스에서의 생활이 점점 편해질수록 자신이 지금 발 디디고 있는 이곳이 모두를 위한 모두의 공간임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영화의 중후반에 다다르면 오드리의 방에도 편하게 오고 가는 준호를 보면 오드리 하우스가 준호 스스로 굳게 닫고 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있어도 괜찮은 공간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성별, 성 정체성, 자신의 업보 등 오드리 하우스에서는 뭐든지 오케이(OK)인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새 이름이 온전하게 자신의 이름이 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는 속설이 있다. 오드리, 고모라는 말이 입에 잘 붙진 않겠지만,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마지막 구절처럼 영화 마지막에서 보여지는한 줄기의 희망을 통해 온전히 오드리만의 이름이 되는 날이 머지않아 찾아올 것임을 짐작해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