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퀴어영화제 리뷰 KQFF REVIEW


[데일리 뉴스]프레임 밖으로 뛰어드는 여성들의 몸과 짓

프레임 밖으로 뛰어드는 여성들의 몸과 짓

양승서 기자단

“ 여성극단의 레퍼토리가 무슨 국극이겠는가. 무엇보다도 창극예술을 해독하고 대중으로 하여금 창극을 오해 또는 과소평가하게 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
… ’ 남녀 ’ 창극인 모두가 창작하고 갈고 닦아서 ‘ 전통 ’ 창극을 정립하는 데 다 같이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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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보자. 상투를 튼, 가슴팍이 납작한, 넥타이를 맨, 정장을 입은, 깊고 짙은 눈매의, 수염을 오래 기른, 거칠게 명령하는, 팔자로 걷는, 여자를 품에 안는, 담대하게 휘어잡는, 여자를. 더 이상 ‘여자’이고 싶지 않은 여성. ‘나’를 뛰어넘는 ‘나’이고 싶은 여성의 이야기가 바로 [믹스앤매치: 여성국극&보깅댄스]이다. 1970년대부터 전개된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은 이분법적 젠더를 와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을 뿐 아니라 퀴어 정체성 및 공동체를 활성화시켰다. 특히, 동시대 예술에서 견고히 쌓여진 젠더 규범을 해체하고자 노력하며 가부장제의 권력관계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믹스앤매치: 국극&보깅]에서는 퀴어의 정체성과 권리를 무대예술로써 표현하는 다양한 미학적 도전을 통해 사회적 남성성과 여성성의 새로운 해석을 논의한다.


‘여성국극’은 남성 국악인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극단의 여성차별에 반발하여 여성들이 모여 만든 창극을 뜻한다. 기존 창극과 달리 소리와 춤, 연기가 결합되어, 1950년대까지 열렬한 호응을 얻으며 당시 최고의 대중예술로 자리잡았지만 1962년 국립극장 전속의 국립국극단이 창단되며 급격히 몰락했다. ‘저급한 통속예술’이라는 인식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정은영 감독의 <정동의 막>은 이렇게 사라져 가는 여성국극의 끝자락을 붙잡은 남역배우 남은진을 조명한다.


작품의 흥미로운 지점은 명맥이 끊긴 여성국극을 기록하기 위해 수많은 내적 투쟁을 하고 있는 남은진이 전통예술을 잇는 전수자로서의 명분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열망과 성취가 그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는 무대 위에서 ‘남자’가 되는 뜨거운 이끌림과 열망을 말한다. 그는 무대 위에서 남자를 ‘흉내내는’ 여성에 그치지 않는다. 여성국극의 핵심은 남자만이 가질 수 있었던 주체, 신체, 정체성을 ‘되찾는 것'이고, 여성이 ‘누구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건네는 것이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훈련을 통해 남성성을 학습한 배우는 무대 뒤에서, 무대 밖에서, 관객석에서도 여전히 남성으로 존재한다. 작품은 이러한 배우의 ‘되어감’을 비언어화된 방식으로 보여주며, 무대막을 붙잡고 그 안의 정동情動을 가다듬으며 해방을 기다리는 순간에 함께 감응한다.


<유예극장>은 여성국극 남역배우 남은진과 한국 전통 가곡 전수자인 박민희, 드랙퍼포머인 드랙킹 아장맨의 인터뷰와 퍼포먼스를 결합시켜 견고히 역사화된 ‘사회적 전통’과 ‘성별’을 비판한다. “살아남을 수 있을것 같아요?” 라는 인터뷰어의 날선 질문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전통’을 그대로 이어나가는 것이 아닌, 창극이 쇠퇴하는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현대적으로 재생된 새로운 예술양식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한 시절 아름다웠던 것이 사라진다고 한들 그것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이 <유예극장>의 태도인 것이다.


서늘한 기계음과 함께 극장의 빈 의자가 차근차근 조작되는 모습을 느릿하게 담아내는 오프닝은 이러한 태도를 효과적으로 역설한다. 한 장르의 가치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관객들, 반성 없는 전통을 기다려주지 않는 관객들을 목격하는 듯한 이 장면은 <정동의 막>을 지배하는 극장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두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빈 극장’이다. 의자는 천천히 세워지지만 관객은 들어오지 않고,“모든 조작이 완료 되었습니다” 라는 음성 아래에서 여성국극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현실만이 지겹게 반복된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객석. 절대로 열리지 않는 무대막. 두 작품은 이 싸늘한 극장의 감각을 공유하며 극장을 한 장소로서의 등장인물처럼 활용해낸다.

세 예술가의 퍼포밍이 여러 개의 프레임으로 분할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음을 만들어내는 감각적인 편집 또한 인상적이다. 세 사람의 몸짓과 목소리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리드미컬하게 재조립되는데, 관객은 영상 속 또 다른 영상들에 매몰되며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감독은 매체예술가로서 이러한 ‘매체의 과잉 사용’을 통해 관객에게 초과된 감각을 체험하게 하고 규범적이고 안정적인 감각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란다.

정은영 감독의 이 프로젝트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낡은 전통을 현재로 소환해 다시 조형해내며 주체적인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를 ‘퀴어링’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퍼포밍’을 한다는 것은 끝없이 누군가를 수행하는 것이고, ‘젠더’란 특정 성별에 덧씌워진 사회적 규범을 끊임없이 수행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동작과 젠더는 결코 분리시킬 수 없는 관계이다. 이러한 수행적 젠더의 아이디어는 퍼포밍 아티스트에 대한 감독의 관심을 부추겼고, 비디오라는 매체 안에서 해결되는 것 이상의 신체적인 감각을 창조해내도록 만들었다. 태어나는 순간과 함께 몸과 정신에 달라붙은 수식어들을 과감히 벗어 던지는 사람들. 사라져가는 한 시절의 아름다움을 애써 붙잡기보다는 남겨두고자 하는 사람들. 이들의 춤과 노래는 더 이상 스크린 안에 머무르지 않고 당신 앞에 위험한 속도로 뛰어들 것이다.

<특별전 1>은 6월8일 20시 20분에 3관에서 관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