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퀴어영화제 리뷰 KQFF REVIEW


[데일리 뉴스]퀴어의 노래; 연가(戀歌), 비가(悲歌) 또는 독백(獨白)

퀴어의 노래; 연가(戀歌), 비가(悲歌) 또는 독백(獨白)

임종하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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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QFF의 해외단편 3 : 퀴어 연가(戀歌)는 ‘사랑’을 노래한다. 퀴어 연가(戀歌)는 톡톡 튀는 사랑의 달콤함을 노래하기도 하고, ‘나’를 정립하는 과정에서의 고뇌가 담긴 독백이기도 하며,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비가(悲歌)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랑이 담긴 한 곡의 연가(戀歌), KQFF가 스크린 위로 엮어낸 사랑 노래에 귀를 기울여보자.

시작하는 사랑의 달콤함, 연가(戀歌)

<원, 투, 쓰리>의 카밀라는 룸메이트 제시를 짝사랑한다. 하지만 제시는 카밀라의 마음을 모르는 채로 파티에서 친구 로빈을 소개시켜준다. 카밀라의 숫자 강박을 보여주는 “원, 투, 쓰리“는 단지 숫자를 향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제시를 향해 있는 카밀라의 마음. 카밀라는 우연히 배우게 되는 ‘마술’을 통해서 자신의 강박장애와 이성애자 제시를 향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랑을 향해 나아간다.

카밀라가 ‘동성애’와 ‘이성애’의 경계에서 짝사랑에 애가 탔다면, <젠장할 경계>는 경계를 넘어 선 사랑을 보여준다. 게이인 댄은 자신을 “나는 그냥 레이야” 라고 정의하는 논바이너리 친구 렌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레이의 방에서 단둘이 남은 댄과 레이. 둘의 몸이 닿는 순간 그저 ‘나’일 뿐인 나를 ‘너’일 뿐인 너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경계를 뛰어넘어 사랑을 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지금도 여전히 소수자들의 ‘사랑’이 금기인 곳이다. 최근에는 체첸 공화국에서 소수자를 구금 및 고문하는 일까지 있었던 곳이다. 그렇기에 이곳의 사랑 노래는 조심스럽다. 영화 <한 모금만>에서 해변에 누워 담배 한 개비를 나눠 피우는 두 사람처럼. 두 사람이 손에서 손으로 담배를 넘기는 나른하고 한편으로는 로맨틱한 장면에는 언어가 없다. 그저 사랑을 암시하는 행동과 사랑이 존재하는 담배 한 개비의 짧고 애틋한 시간이 있을 뿐.

‘나’라는 존재를 향한 질문, 독백(獨白)

<한 모금만>이 영화에 드러난 지리적 특성을 최소한으로 줄였다면, <아이 세이 더스트>와 <빨간 드레스>의 국가는 주인공과 뗄 수 없다.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디아스포라를 겪은 자신의 윗세대가 ‘고향’이라고 부르는 국가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국가 사이에 서있다. <아이 세이 더스트>와 <빨간 드레스>의 주인공들은 서로의 대화 속에서 혹은 혼자만의 방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묻고 확인한다.

<아이 세이 더스트>는 뉴욕의 한 가게를 배경으로 두 개인을 엮는다. 자신의 시 낭독회의 포스터를 걸기 위해 가게로 들어온 이에게 가게 점원은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다. 팔레스타인에서 왔다는 시인은 점원에게도 같은 말을 되묻고, 이에 점원은 ‘내가 온 곳은 내가 부서진 곳’이라고 대답한다.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시작했던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겨 체스판을 앞에 두고 대화를 이어간다. 그들의 대화는 시가 되고 이를 듣는 점원에게 가 닿는다. 존재의 뿌리를 묻는 짧은 질문으로 시작한 대화가 시로 재가공 되는 이 과정은 디아스포라 2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기 위해 나눈 그들의 역사가 담긴 자전적 대화다.

시인의 ‘먼지에서 왔다’는 말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동시에 고향인 팔레스타인을 뜻하기도 한다. 체스는 전쟁을 축소한 놀이이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눴던 책상 위에서 펼쳐지는 작은 전쟁은 단순히 대화의 긴장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전쟁으로 부서지고 척박한 그곳. 가본 적은 없는 고향. 그렇게 발이 닿지 않고 흘러 다니는 먼지 같은 상태의 그들을 붙잡아 주는 것은 두 사람의 사랑이다.

<빨간 드레스>는 스페인 영화다. 하지만 영화의 초반에 이를 알기란 어렵다. 중국어를 쓰는 ‘시아오 시안’은 고압적인 엄마가 시킨 일을 억지로, 하지만 무던히 해나간다. 엄마의 강요로 빨간 드레스를 고치던 그날 밤, 친구가 시안을 찾아온다. 친구는 시안을 파티에 몰래 데리고 나간다. 시안은 그런 친구에게 마음이 끌린다. 붉은 빛이 만연한 파티 장소는 가장 중국적인듯하나, 그곳에서 흐르는 스페인어로 인해 다국적인 곳이 된다. 친구는 그곳에서 스페인 남자를 만나고, 혼자가 된 시안은 집으로 돌아와 고치려고 했던 빨간 드레스를 입는다. 시안에게 빨간 드레스는 여전히 중국말을 쓰며 마작을 두는 ‘중국인’ 어머니의 그늘이자 동시에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으로서의 욕망이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시안은 자신을 해방한다. 영화의 끝, 빨간 가운을 걸친 시안의 눈빛은 어딘가 다르다. 이제 시안은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당당하게 빛난다.

그리운 사람을 향해 부르는, 비가(悲歌)

<사랑 후에 남겨진 것>은 제목에서처럼 씁쓸한 사랑의 뒷맛을 담고 있는 영화다. 칸텔라와 에바는 함께 아이를 키우며 살았지만, 지금은 헤어진 상태이다. 칸델라는 결혼을 앞두고 양육권 포기 서류에 서명을 받기 위해 에바의 집으로 찾아간다. 완전한 이별을 위한 절차 때문에 만난 두 사람은 사랑했던 옛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에 잠긴다. 결국, 둘은 사랑도 나누지만, 서명을 받고 문을 나서자 그나마 남아있던 사랑의 잔열도 더 이상 남지 않는다.

한편, <멈춰진 시간>의 아디와 엘렌의 사랑은 죽음 앞에서도 꺼지지 않는다. 림프종 5기를 선고받고 요양원에 들어온 아디는 엘렌의 편지를 받고 수녀원에서 함께 사랑을 나눴던 그녀를 추억한다. 죽음을 앞둔 현실과 사랑이 새겨졌던 10대 시절이 교차하며 아디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꺼지지 않는 사랑을 애틋하게 그려낸다. 영화의 마지막, 아디를 찾아온 엘렌은 세월을 가로질러 죽음의 문턱에 선 엘렌을 구원하러 온 듯하다. 둘의 사랑은 죽음 앞에서도 꺼지지 않는다.

바다가 앗아간 아들을 그리워하는 엄마의 시간을 담고 있는 <라이징 선>의 사랑은 애달프다. 엄마는 바다, 학교 등 아들이 머물렀던 자리들을 돌아다니면서 아들과 함께했던 추억을 되감는다. 그렇게 아들과 사랑했던 동급생 ‘청허’를 만나는 엄마. 두 사람은 세상을 떠난 아들을 향한 사랑을 공유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렇게 ‘청허’와 함께 오래토록 바다를 바라본 엄마는 그제야 그동안 혼자서 간직해왔던 아들을 향한 슬픔과 그리움을 위로받는다.

해외 단편3은 6월 8일 11시 2관에서 관람 가능합니다.